스포츠 경기 속 비밀이야기 5, 6편

기술 혁신과 기술 도핑


오늘날 스포츠 선수들의 실력은 과학 기술의 발전에 크게 빚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더 가벼운 소재로 만든 운동화를 신으면, 달리기 기록을 향상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새로운 장비가 개발되었다고 무조건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어떤 장비는 '기술 혁신'으로 인정받고 널리 활용되는 반면, 다른 장비는 '편법'이라고 금지되기도 하거든요.

스포츠 장비의 발전이 '기술 혁신'으로 인정받은 대표적인 사례는 육상 '장대높이뛰기' 경기의 '유리 섬유 장대'에요. 장대는 영어로'폴pole'이라고 불러요. 초창기에는 딱딱한 나무로 폴을 만들었대요. 그러다가 1940년대 즈음 약간의 탄성이 있는 대나무 폴이 나오자 높이뛰기 기록이 크게 향상되었어요. 그런데 1942년 세계 신기록이 나온 이후, 기록이 깨지지 않았대요. 알루미늄으로 만든 폴이 개발되긴 했지만 신통한 효과도 없었고요.

그렇게 신기록에 한창 목말라 있던 1961년, 유리 섬유 소재로 된 폴이 등장했어요. 유리 섬유 폴은 튼튼하면서도 탄성이 좋아서 선수들이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었어요. 그 이후 3년 사이에 세계 기록이 무려 48센티미터나 올라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러자 알루미늄 폴을 사용하는 선수들은 유리 섬유 폴 사용에 반대했죠. 순전히 '폴' 덕분에 기록이 향상되는 건 스포츠가 아니라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경기규칙을 정하는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유리 섬유 폴의 사용을 인정했어요. 큰 탄성 덕에 만들어지는 선수들의 역동적인 동작이 멋진 볼거리를 만들었거든요. 그리고 더 중요한 점!  장대높이뛰기 종목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해선 경기 기록의 향상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이와 반대로 '금지된 신소재 장비도 있어요. 그중 하나가 2000년대초 열풍을 일으킨 '전신 수영복이에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경기에서 수영복 제조 회사인 스피도Speedo는 사람 피부보다 매끄러운 소재로 만든 수영복을 선보였어요. 그 효과는 탁월했지요. 시드니에서 나온 15개의 세계 신기록 중 13개가 스피도의 전신 수영복을 착용한 선수들에 의해 수립되었거든요. 그 이후 스피도는 폴리우레탄 소재로 만든 전신 수영복을 몇 차례 더 개발했어요. 그리고 2008년 한 해 동안 스피도 수영복은 각종 세계 대회에서 무려 108번이나 세계신기록을 세웠지요.

이렇게 무더기로 신기록이 탄생하자 사람들은 반가움 대신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선수들의 실력이 아니라 수영복이 신기록을 세우는 거 같았거든요. 더구나 공정성 문제도 있었어요. 모든 선수들이 스피도 수영복을 입을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논쟁에 더 불을 지핀 건 다른 수영복 제조 회사들이었어요. 아레나, 미즈노, 아디다스 같은 경쟁 회사들은 스피도 혼자만 승승장구하는 게 얄미웠거든요. 특히 스피도의 최대 경쟁사인 아레나는 국제수영연맹에 항의했어요. 스피도의 폴리우레탄 수영복이 스포츠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면서, '기술 도핑'이라고 주장했어요. 원래 '도핑'은 선수들이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걸 말해요. 아레나는 스피도의 전신 수영복이 약물 복용처럼 '편법'으로 기록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한 거죠. 국제수영연맹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 2009년부터 공정한 경쟁을 위해 폴리우레탄 소재의 수영복과, 전신 수영복 디자인을 금지했어요.

사실 장대높이뛰기의 유리 섬유 폴과 수영의 폴리우레탄 수영복은 똑같이 스포츠 경기의 기록 향상을 도운 혁신적인 기술이에요. 그런데도 두 신소재 장비가 서로 다른 운명을 맞게 된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육상과 수영, 두 스포츠를 둘러싼 정치적, 상업적 관계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신기록을 갈망하던 육상에서는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유리 섬유 폴을 환영한 반면, 여러 수영복 제조업체가 후원하는 수영에서는 한 회사가 독차지하고 있던 폴리우레탄 수영복을 금지했던 거예요.

흔히 스포츠는 공정한 경쟁이라고 하잖아요? 경기가 진행되는 상황만 놓고 보면 그럴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 경쟁을 벌이기 위한 규칙은 스포츠를 둘러싼 커다란 정치·경제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거 같아요. 이처럼 어떤 기술은 허용하고 다른 건 금지하는 걸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기록이라는 것도 어쩌면 순수하고 공정한 선수들 사이의 경쟁의 결과라기보다는, 스포츠를 둘러싼 여러 욕심들 사이에서 타협되고 조절된 결과일지도 몰라요.

 

운동선수가 되려면 봄에 태어나라(?)


몇 년 전 한 언론사에서는 한국 프로 야구 선수들이 어느 달에 가장 많이 태어났는지를 발표한 적이 있었어요. 봄3~5월과 여름6~8월에 태어난 선수들58%이, 가을과 겨울에 태어난 선수들42%보다 더 많았어요. 프로 축구 선수들에 대한 비슷한 연구 결과도 있는데, 계절별 차이가 조금 더 컸어요. 62퍼센트의 축구 선수들이 봄과 여름에 태어난 반면, 가을과 겨울에 태어난 선수는 38퍼센트에 불과했어요. 그렇다면,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봄이나 여름에 태어나는 게 유리한 걸까요?

잠깐만요! 아직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일러요. 왜냐면 영국에서도 비슷한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결과가 반대였거든요. 축구 선수로 선발된 청소년 805명의 생일을 살펴봤더니, 9~12월에 태어난 선수들이 가장 많았고58.7%, 그다음이 1~4월에 태어난 선수들28.6%, 그리고 5~8월에 태어난 선수들의 숫자가 가장 적었어요 12.7%. 그렇다면 왜 영국에서는 한국과 반대로 가을과 겨울에 태어난 선수들이 많은 걸까요?

그 해답은 바로, 학교의 새 학년이 언제 시작하느냐에 있었어요. 3월에 새 학년이 시작하는 한국에서는 봄에서 여름 사이, 9월에 새학년이 시작하는 영국에서는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태어난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또래들보다 생일이 빠른 운동선수들의 숫자가 많은 거예요. 이런 현상은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도대체 생일이 빠른 거랑, 운동선수가 되는 거랑 어떤 상관이 있는 걸까요?

물론 태어난 시기가 운동 소질을 결정하는 건 아닐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소질을 계발하는 데 필요한 기회랑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요. 같은 학년이라도 생일이 1월인 친구랑, 생일이 12월인 친구랑은 거의 1년 가까운 차이가 있어요. 어릴 때는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기 때문에 같은 학년이라도 태어난 달에 따라 신체 조건이나 운동 능력의 발달 정도에 큰 차이가 나요. 그렇다 보니 같은 학년끼리 운동 경기를 해도 몇 개월 '더 자란'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겠지요? 더군다나 운동을 잘해서 칭찬을 받으면, 더 흥미가 생기고 노력하게 되니까 더욱 실력이 늘겠죠? 그중에서도 실력이 월등한 친구라면 선수로 선발되어 체계적인 훈련을 받게 되니까, 이런 이유로 운동선수들 중에는 생일이 빠른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통계에 불과해요. 태어난 시기는 운동에 흥미를 느끼거나 배울 기회를 갖도록 하는데 영향을 미칠 뿐, 나머지는 오롯이 선수들의 노력, 오랜 시간 땀 흘리며 갈고닦은 실력에 의해 좌우되니까요! 그러니까 언제 태어났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기준은 아닌 거 같아요. 중요한 건, 차근차근 자기가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것이 무언지 알아나가는 거죠. 여러분은 저마다 성장 속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한 가지 소질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잠재력을 가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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